[요쥬] The Hero 02
냅두면 영원히 안쓸 거 같아서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고쳐서 올리려고 했는데 그러려고 하니까 더더욱 영원히 안올릴 듯 하여...(피눈물
커플링은 요한X쥬다이
패러렐 세계관인지 원작 기반인지 결국은 패러렐입니다b
2호기 입니다.
The Hero 01 << 링크
“아, 맞다 쥬다이. 중요한 걸 잊고 있었는데.”
“왜?”
“여긴 어디야?”
쥬다이와 들어온 작은 건축물 안쪽으로는 내려가는 계단이 나 있었다.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멀찍이 밑에 차가 달리는 것을 보고서야 요한은 자신이 지금까지 있던 장소가 옥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거대한 드래곤이 자신의 시야를 가려, 주변을 파악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라며 요한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쥬다이는 그의 질문에 난감하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거 이제야 물어 보는 거야?”
“네 정령이 너무 멋져서 할 말을 잃었었어.”
“그치?! 유벨 멋있지?”
아이가 뛰어 가는 대로 계단에 빠르게 빛이 들어왔다. 쥬다이는 한 번에 여러 계단을 훌쩍 훌쩍 뛰어넘으며 까르륵 웃어댔다. 요한은 그런 그의 뒤를 천천히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여긴 어디야?”
“일본이고, 우리 집이야.”
“일본?”
“응. 일본 몰라?”
“몰라. 이름은 들어 봤나. 돌아가려면 비행기 표라도 구해 봐야겠는 걸.”
쥬다이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이번엔 손으로 전등을 켰다. 넓은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빠른 발걸음으로 종종종 뛰어가더니 이내 벽의 한쪽에서 멈춰 섰다. 빨간색의 동그라미가 눈에 띄는 달력이었다. 동그라미 밑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생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날짜는 바로 오늘 이었다.
요한은 쥬다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쓰다듬어 내렸다. 결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감겨 왔다.
“생일 축하해, 쥬다이.”
“응.”
멍하니 달력을 바라보고 있던 쥬다이가 빙그레 웃으며 요한을 바라봤다. 처음 본 아이인데 어째서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걸까. 애교 많아 보이는 볼을 가볍게 찌르고는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형이 왔으니까, 이제 쓸쓸하지 않아.”
“그렇다면 옆에 있어 줄게.”
“응!”
요한은 쥬다이의 손을 잡고 달력을 다시금 올려봤다. 빨간 색의 동그라미가 몇 번이고 덧칠 되어 있었다. 그만큼 기다리고, 그만큼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쓸쓸하다는 것은 아마 누군가와 함께 보낼 다른 사람이 존재 했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요한은 집안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리도 기대하던 생일을 이 한밤중이 되도록 혼자 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터였다. 한숨을 쉬며 달력의 동그라미 안의 숫자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쥬다이.”
어린 아이가 따라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까와도 같은 달력이 평범하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요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입을 열었다.
“왜 옛날 달력을 쓰고 있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그….”
쥬다이는 자신을 천사라고 했지만, 천사보다는 미래인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요한은 시계를 쳐다봤다. 파닥 파닥 한 장씩 넘어가는 그 시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달력과 같은 년도를 표시 하고 있었다. 시계의 패널이 가볍게 한 장, 두 장 넘어갔다. 요한의 모습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던 쥬다이가 지루한 하품을 길게 늘어뜨렸다.
“형네 시간이랑 다른 게 당연하잖아. 형은 정령이고, 나는 사람인걸.”
“으음. 쥬다이 몇 살?”
“다섯 살!”
“그럼 나랑 동갑이네.”
“형 다섯 살이야?”
요한이 과장된 모션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그럴 리가 없잖아-라며 말끝을 내렸다. 볼을 부풀려 대는 쥬다이를 뒤로 한 채로 요한은 넓은 창밖을 내려다 봤다. 꽤나 높은 건물이었는지 넓은 시야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다른 건물들의 옥상이 보였다. 먼 곳에 보이는 간판들에는 처음 보는 문자가 가득했다. 요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분명 나는 3층에서 떨어졌다. 정령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손을 뻗었던 것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방의 밑엔 잔디가 깔려 있었지만 분명 한두군데 부러져도 이상할 것은 없는 높이였다. 나는 병원에서 정신을 잃은 상태고, 지금의 이 상황은 그 와중에 꾸는 꿈이 아닐까.
“요한!”
창밖에까지 들릴 기세로 커다란 목소리에 요한이 몸을 움츠렸다. 동갑이니까 그냥 이름 불러도 되는 거지? 쥬다이의 질문에 요한은 기세에 눌린 것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 돌아 갈 거야?”
“돌아 가야해.”
“나랑 있으면 안 돼? 어차피 엄마아빠 잘 안 들어오고, 나 혼자 있는 걸. 여기 계속계속 있어도 된단 말이야.”
요한의 손이 쥬다이의 볼을 쓸었다. 둥그런 눈동자에 슬며시 눈물이 들어찼다. 강아지마냥 동그란 눈을 반짝 대는 어린애에 요한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갑작스레 모르는 곳, 모르는 시대에 떨어져 버린 것은 확실히 곤란한 일이었다. 자고 일어난다면 그대로 요한은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쥬다이가 높이 뛰어 올라 요한의 목에 매달렸다. 요한은 자신의 품에 매달린 쥬다이를 마주 안았다.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어째서인지 그 따스함만은 너무나도 그립고 익숙했다.
***
쥬다이의 집에 몰래 투숙하며 알게 된 것은, 요한 안데르센으로서는 이 나라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쥬다이가 하는 말 역시 자세히 들어보았을 때 처음 들어보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쥬다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체계는 어쩐지 요한이 정령의 말을 알아듣는 것과 매우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요한은 자신의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TV를 커다란 리모컨을 눌러 껐다.
유우키 쥬다이. 5세. 성격은 밝고 천진난만. 가족은 양 부모가 맞벌이로 쥬다이를 혼자 두는 일이 많았다. 기껏해야 새벽에 들어와 쥬다이가 자는 것조차 확인하지 않고 후다닥 잠들었다가 아침에 겨우겨우 인사를 하고 출근 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쥬다이가 살고 있는 건물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드문 높은 층의 맨션 꼭대기 층이었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쥬다이의 집과 옥상과 이어지는 전면이 쥬다이의 생활 반경이었다.
쥬다이의 친구라고는 하루에 한번 꼴로 찾아오는 형이 하나 있는 것이 다였다. 요한보다도 열 살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남자가 쥬다이와 듀얼을 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아무래도 친구라기보다는 부모님에게 고용된 학생인 모양이지만 쥬다이에겐 그리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닌 듯 했다. 요한은 쥬다이가 듀얼을 즐기는 시간 동안 소리하나 내지 않고 쥬다이의 방에 들어가 시간을 때우고는 했다.
말 하나 통하는 사람이 없는 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요한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쥬다이와,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위벨이 다였다.
「난 저 녀석 싫어.」
“왜? 쥬다이가 잘 따르는 걸 보니, 좋은 사람 같은데.”
「너랑 같은 냄새가 나.」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위벨이 다리를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반대로 감으며 중얼 거렸다. 요한은 한쪽은 남성의, 한쪽은 여성의 몸을 한 그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위벨과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눈을 둬야 할 곳을 알 수 없어서 그대로 고개를 들고 있던 책으로 돌렸다. 쥬다이의 그림책 이었다.
위벨은 박쥐를 닮은 날개를 퍼덕이며 이를 갈아댔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겹쳐져 으르렁 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니 다행이네.”
「짐승 같아 보인다는 거다.」
“처음 봤을 때는 위엄찬 느낌이었는데.”
「네 정체를 아는데 굳이 잰 척 해야 할 이유도 없잖아.」
“일부러 그런 거야?”
위벨의 입이 금방이라도 욕을 할 것처럼 비틀어졌다. 며칠간 꽤 많은 대화를 했지만, 언제나 요한 자신에 관련한 질문을 하면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요한은 쥬다이의 그림책을 종이에 베껴 써 내렸다. 쥬다이가 그 남자가 오기 전까지 소리 내어 읽어준 책이었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아는 건 너 뿐인 것 같은데, 슬슬 이야기 해 줄 때도 되지 않았어?”
「…….」
“언제까지 쥬다이에게 신세지고 있을 순 없어. 난 내 나라로, 내 시대로 돌아가야 해. 누나와 약속한 학교에 입학도 해야 해서 말이지.”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몇 번이고 반복해 들려 왔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요한의 볼을 스쳤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에 그가 살풋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곧,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에 요한은 자신이 큰 소리를 내선 안 된다는 것을 잊은 채로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넌 여기 있어야 해.」
가볍게 날아 요한의 곁으로 날아온 위벨이 그의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눌렀다. 요한의 고개가 위벨의 손에 눌려 그대로 꼬꾸라졌다. 요한의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도록 문질러댄 위벨이 그대로 요한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요한은 울려대는 머리를 잡은 채로 위벨을 올려다보았다.
“너 왜 나를 만질 수 있어?”
「물어보고 싶은 건 그 쪽이야? 네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 진 궁금하지 않아?」
“둘 다 대답하면 되잖아.”
「하나씩 물어.」
난감함에 한숨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위벨이 손으로 입을 막아 버렸다. 위벨은 그대로 요한의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 채로 입을 열었다.
「넌 여기서 쥬다이를 지켜야 해. 그걸 위해서 태어났고, 넌 그걸 위해서 살아야 해. 그게 나와 너의 사명이야.」
위벨의 오드아이가 빛을 내는 듯 맑아졌다. 은은히 번져 나오는 빛을 품은 채로, 위벨은 붉은 쪽의 눈을 감았다. 여성의 몸을 가진 방향이었다. 긴 속눈썹이 내려가는 광경이 상세히 보일 만큼 유벨은 요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 대었다.
「긴 시간이었지. 나는 나의 왕을 찾기 위해 헤맸고, 겨우 이 자리에 섰어. 하지만 넌 이렇게도 쉽게 소원을 이루고, 이다지도 편리하게 쥬다이의 앞에 섰지.
나는 네가 싫다. 나의 왕을 앗아가려는 네가 정말이지 싫다. 하지만 너와 나는 하나의 마음을 공유했지. 나는 너를 원망할 수 없어. 이번에도 너와 나는 또 우리의 왕을 죽이게 될지도 몰라. 분명히 넌 또 소원을 빌겠지.」
“위벨.”
「어린 아이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너의 영혼은 이리도 쉽게 아이의 몸을 떠났다. 분명 너의 진짜 육체는 따로 있어.」
소년의 목소리였다. 양쪽으로 갈라져 들리던 음색이 하나로 나뉘어 어린 소년의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은 거슬리던 저음이었던 것이 위벨의 멈추지 않는 말이 쏟아지는 사이 서서히 미성의 그것으로 변해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목 끝에 차오른 것을 억눌렀다. 위벨의 녹색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리라는 걸 요한은 자신도 모르는 새 깨닫고 있었다. 요한의 입을 가리고 있던 위벨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의 소원을 빌지 마라. 지금의 현실에 만족해라. 너의 모습은 네가 그리도 소원하던 모습 그대로다. 요한 안데르센.」
입을 막고 있는 것이 사라졌음에도 요한의 입술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위벨의 말이 이상할 정도로 날이 선 채로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렴풋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감각에 요한은 뇌 안을 무언가로 간질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위벨의 감겼던 붉은 눈이 살며시 뜨였다. 이질적인 빛이 위벨의 눈에서 사라졌다.
「요는 간단해. 너는 얼마 안 있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거다.」
“어?”
「선택은 두 가지야. 의무를 다해 쥬다이를 찾아 돌아오거나, 아니면 네 인생을 찾아 삶을 이어가는 것.」
위벨의 보랏빛 입술에 그의 긴 손가락이 닿았다. 비밀 이야기를 말하 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작게, 작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새 양 갈래로 갈라지던 목소리가 돌아와 있었다. 조금쯤은 여성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진 듯 한 이미지였다.
“선택?”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하여간 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야?”
「아마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가게 될 거야. 생각보다 현세의 연이란 건 강한 법이니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다. 기껏해야 며칠 내로 돌아가게 되겠지.」
요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위벨은 그런 요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툭 건들고는 돌아서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어린 아이 혼자 쓰기엔 굉장히 커다란 침대 위에 위벨은 날개를 편 채로 털퍼덕 소리를 내며 누웠다.
“너 정령이잖아? 어째서 현실에 관여 할 수 있는 거야?”
「절반은 인간이니까. 네가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위벨의 존재가 있다면 모두에게 알릴 수 있다. 정령이 실존 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요한은 위벨이 누운 침대로 달려가 그대로 옆에 매달렸다. 날개가 짓눌린 위벨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생각보다 꽤 아픈 모양이었다.
「내려가.」
“위벨, 내 정령이 되어줄 생각은 없어?”
「죽어도 없어. 일곱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없어.」
정령이 만져 진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다. 존재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 켠은 불안에 차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만든 환영은 아닐까, 그들에 대한 애정은 혼자 살아가려는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낸 거짓은 아닐까.
「떨어져.」
“위벨, 날개 만져 봐도 돼?”
「너 바보라는 소리 자주 듣지?」
이런 일도 잠깐의 시간이라면 나쁘지 않다. 요한은 위벨의 말을 무시한 채로 위벨의 날개를 만지작거렸다.
날개를 만지는 요한의 손을 피하는 위벨과 지지 않고 손을 내미는 요한이 실랑이를 벌이는 차에, 듀얼을 끝내고 돌아온 쥬다이가 방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져 버린 것인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의 쥬다이가 볼멘소리를 냈다.
“요한! 자꾸 소리 내면 어떡해.”
“미안-. 위벨이 재밌는 소리를 해서.”
“위벨 있어? 오늘은 소환도 못했어.”
“응. 여기 있어.”
요한은 쥬다이의 손을 잡아 침대 위로 세게 당겼다. 작은 비명을 지른 쥬다이가 요한의 위로 뛰어 오르듯 안겼다. 그런 쥬다이의 손을 그대로 위벨의 날개 죽지에 올렸다. 차가운 위벨의 날개가 쥬다이의 손에 닿았다.
“위벨이 있어!”
「잠깐! 무슨 짓이야!」
“위벨? 위벨이지?”
쥬다이의 볼이 흥분으로 불게 상기 되어 물들었다. 꽃이 피어난 듯 미소 짓는 소년의 얼굴에 요한은 그대로 쥬다이를 안아 들어 위벨의 품에 안겼다. 쥬다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형태를 가지고 자신에게 닿아 오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팔을 뻗어 그것을 끌어안았다.
위벨은 자신의 허리를 감아 안아온 작은 어린 아이를 내치지도, 마주 안지도 못 한 채 양 팔을 들고 쥬다이의 이름을 반복하여 불렀다. 하지만 당황한 위벨의 목소리는 쥬다이에게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가족에게 닿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시끄러워! 쥬다이가, 으.」
“쥬다이, 위벨이 부끄러워하고 있어.”
위벨은 허공을 헤매던 자신의 손을 살며시 쥬다이의 어깨에 가져갔다. 잘못 손대면 깨어질 것을 만지듯,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손놀림 이었다. 위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얼굴로 가만히 쥬다이를 밀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게 했다. 고개를 내려, 가볍게 자신의 이마를 쥬다이의 머리에 마주 대었다. 금색의 눈으로 보이는 장식에 쥬다이의 동글한 이마가 닿았다. 위벨의 붉은 눈과 푸른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닿지 않으려 했는데.」
“위벨이지? 응?”
「당신에게 만큼은 닿지 않으려 했는데.」
위벨의 눈물이 쥬다이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쥬다이의 볼 위로 흘렀다. 쥬다이는 자신의 볼에 흐르는 무언가를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손끝에 남아 있는 물기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팔을 뻗어 위벨의 목을 끌어안았다. 마치 위벨이 보이는 것 같은 손동작이었다.
「쥬다이.」
“응, 위벨.”
「쥬다이.」
“만나고 싶었어, 위벨.”
위벨의 눈물이, 소리 하나 없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차에, 위벨의 몸이 서서히 그 자리에서 흐릿해 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느닷없이 형체를 가지고 닿아온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존재의 손에 이끌려 닿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소년에게 정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요한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무언가가 두 사람의 사이에서 완성되었단 감각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쥬다이를 향해 한없는 자애로움이 담긴 눈길을 내려주던 위벨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요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
「곤란하니까 정말로 하지 마. 부탁이다.」
위벨의 손이 사라지기 직전, 아주 약하게 쥬다이를 감싸 안았다. 쥬다이는 자신의 앞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기묘한 감각에 눈을 감고 어린애답지 않은 탄식을 입에 담았다. 가슴에 손을 가져 대고는 그대로 숨을 여러 차례 들어내시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위벨이었어.”
“응.”
“목소리도 들렸어.”
다시는 없이 행복한 얼굴로 쥬다이는 양 손을 깍지 끼어 입가에 가져댔다.
“살짝, 날개가 보였어. 굉장히 멋있었어.”
“쥬다이?”
“굉장해. 위벨은 굉장해! 요한!”
쥬다이는 몸을 날려 요한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그대로 침대로 쓰러진 요한의 몸 위에 편안히 체중을 얹은 쥬다이가 까르륵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 위벨을 만났어.”
“응.”
“또 만날 수 있는 거지? 다음엔 얼굴도 볼 수 있을 지도 몰라.”
“아마, 그럴 거야.”
“형도 그렇게 생각해?”
요한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면에 미소를 띈 쥬다이가 그대로 요한의 목을 끌어안으며 볼에 키스했다. 작은 입술이 볼에 가볍게 닿는 감촉에 요한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요한이 있기 때문이야.”
“아.”
티 없이 맑은 미소가 환히 방 안을 비추는 것만 같았다. 요한이 가볍게 쥬다이의 볼을 쓸자, 고른 치열을 보이며 아이가 방긋 웃었다. 이렇게 웃어 준다면 얼마든지 위벨의 의사를 무시해 줄 수 있었다. 그에겐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요한은 위벨보다는 쥬다이 쪽이 우선하기로 결정했다.
요한이 마음을 굳히는 동안에도 쥬다이는 요한의 품 안에서 배실 배실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귀여워-라는 말이 빠져나갔다. 그의 말에 분홍빛 홍조를 띈 쥬다이가 그대로 요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어왔다.
“쥬다이.”
“요한 너무 좋아.”
무언가 요한이 대꾸하기도 전에 쥬다이의 머리가 요한의 어깨로 떨어졌다. 벽에 매달린 시계의 바늘이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린 아이에겐 슬슬 졸릴 시간이었다. 요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쥬다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씻고 자야지. 요한의 말에 쥬다이가 칭얼대는 소리를 냈다. 요한은 품에 안긴 쥬다이를 그대로 안아든 채로 욕실로 향했다. 칫솔질 한번 안하고 재운다면 다음날 위벨의 잔소리가 두 배 이상으로 증폭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요한은 욕실에 들어오자마자, 어린이용 변기를 내려놓고 쥬다이를 앉혔다. 수건을 하나 꺼내 쥬다이의 목에 두르고는 손에 치약을 묻힌 칫솔을 쥐어주었다.
“자, 이젠 혼자 해야지.”
“응.”
“졸지 마. 쥬다이.”
“응.”
대답을 꼬박꼬박 하면서도 쥬다이의 머리는 흔들흔들 그대로 잠들어 버릴 기세로 흔들려 댔다. 요한은 결국 쥬다이의 손을 잡고 칫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입에서 움직이는 거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어 굉장히 조금씩, 힘을 주지 못한 채 살살 움직여 댔다.
한참 실갱이를 벌인 끝에, 적당히 이를 닦은 구색은 낼 수 있었다. 세면대로 불러 입을 헹구고, 뱉어내고를 반복했다. 서너번 하자 쥬다이도 정신이 되돌아 왔는지 눈에 평소의 빛이 옅게 되돌아왔다.
“나 혼자 할 수 있어.”
“네~ 네. 알았으니까 이제 세수 해야지?”
쥬다이에 목이 두른 수건을 빼내려 쥬다이의 목 뒤로 손을 둘렀다. 갑작스레 몸을 뒤로 움츠린 쥬다이가 요한을 향해 칭얼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혼자 할 수 있어!”
목에 두른 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한은 떨어진 수건을 주워 적당히 세면대 옆에 올렸다. 혼자 할 수 있어? 대견하네. 요한은 위벨이 했던 것 마냥 쥬다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중얼 거렸다.
“그럼 나가 있을 테니까, 씻고 나와?”
“으응.”
욕실의 밖은 무척이나 조용해서, 쥬다이가 세면대에서 물을 트는 소리마저도 들릴 정도였다. 느린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자정이 되어야 돌아오는 쥬다이의 부모님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될 수 있는 한은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
“요한이 너무 좋다니, 사람한테는 처음 들어 본 말이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저 작은 아이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입맞춤 직후에 고백을 받았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연애를 하겠다는 의지는 없었겠지만, 요한에겐 그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원래 그렇게 스킨십이 잦은 애인가?”
내일 물어 봐야겠다. 요 며칠 쥬다이의 생활 패턴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요한의 취침 시간마저도 일러졌다. 요한은 길게 하품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어제까지만 해도 위벨은 방 어딘가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처음 본 날처럼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물가물한 천장 위로 위벨의 모습이 겹쳤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생각하면 왜 위벨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 않은 건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싶을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혼이 빠져 나왔다-라는 것은 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크게 다쳤고, 어쩌다보니 유체 이탈이라도 해서 넘어왔다고 하면 굉장히 판타지스러운 일이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이야기 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요한은 쥬다이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스르륵 눈이 감겼다. 쥬다이의 작은 손이 요한의 눈 위에 덮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린 아이의 입술이 또 한 번, 요한의 입술에 닿았다.